본문 바로가기

여행/국내

[서울구경 #008] 연세대학교의 여름


연세대학교의 건물들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지어졌다. 때문에 석조양식 등 당시의 건축학적 경향을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연희관 옆에 있는 성암관


우리대학원 건물


언더우드관의 명칭은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인 언더우드(H. G.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를 기념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 그는 1885년 내한하여 1915년 연세대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을 설립하는 등 헌신적으로 선교와 교육사업을 하다가, 신병으로 미국으로 귀국하여 1916년 별세하였다. 이 건물은 학관(學館)으로 일명 문학관이라 한다. 연희캠퍼스에서 스팀슨관아펜젤러관에 이어 3번째 석조건물이다. 연희전문학교의 초대 교장인 에비슨(O. R. Avison)은 언더우드의 아들인 원한경(元漢慶)으로 하여금 초석을 놓게 했다.

설계자는 머피(H. K. Murphy)이며, 공사 감독관은 화학과 교수인 밀러(E. H. Miller)였다. 이 건물은 스팀슨관이 준공되고 나서 1921년 10월 착공하여, 1925년 6월 준공하였는데, 지상 3층(중앙탑 5층), 건축면적 693.4㎡(209.63평) 규모였다. 이 건물은 초기 마스터플랜 상의 중심축인 백양로의 종점에 위치하여, 그 좌우에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이 같이 있어, 캠퍼스 내에서 시각적 정점(terminal vista)을 형성한다. 그 전면에는 미국(米國)의 ‘米’(미)자 형으로 구획된 잔디가 깔려 있다. 전체적인 건축 특징은 스팀슨관과 유사하다. 좌우대칭의 단순한 장방형 평면으로, 백양로 축상에 5층 높이의 중앙탑을 일치시키고 전면 좌우 측에 베이 윈도우(bay window)를 설치하여 기념성을 높였다. 외벽은 넓은 창과 장식이 없는 석조 외벽으로 단순한 외관으로 처리되었다. 주 외장 재료는 주변 산에서 채취한 흑록색(黑綠色) 운모편암석으로 거친 마감상태로 사용되었다. 창문 테두리는 다듬은 화강암을 썼다. 주 출입구 1층에는 튜더 아치(tudor arch)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박공지붕에 슬레이트 마감하였으며, 목조트러스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50년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내부와 지붕부가 크게 파괴되었으며, 전후 복구되었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기의 대표적인 대학 캠퍼스인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의 중심건물이면서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 <위키백과 참조>



백양로(白楊路)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내 중심 교통로의 역할을 하는 도로이다.

남측은 정문을 통해 성산로에 맞닿아 있고, 북측은 언더우드관 앞 백양로 삼거리까지 이어져 있다. 전체 캠퍼스 구조에서 중심축의 역할을 하며 연세대학교 내 수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캠퍼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백양로'라는 이름은 1930년대 농과의 실험을 위해 도로의 양 측면에 백양목(白楊木)을 심은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1960년 4월 나무의 수명이 다하여 베어버리고 지금의 은행나무로 대체되었다.

최근 백양로 지하공간을 활용하여 쾌적한 환경 및 보행자 중심의 캠퍼스를 조성하기 위하여 학교측에서 백양로 지하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지하 공간의 상업적 이용 방안을 놓고 학교 내외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