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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평범한 하루

애플 키노트 예찬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를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프레젠테이션이라는 개념이  내 머릿속에는 탑재가 안되어 잇었지만, 내 의견을 남에게 전달하는 툴임을 알고는 있었는지, 파란 배경에 지금 생각해보면 졸렬한 장면 전환 효과와 굴림체로 멋지게 내가 왜 컴퓨터를 바꿔야 하는지 (당시 마니아들이 많았던 롤러코스터 타이쿤 2를 하기 위함이었다) 부모님께 피티를 했던 기억이 있다.


5년 후,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학교 내 프로덕션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는데, 스튜디오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보게 되었는데 휘황찬란하기도 하며 선생님 손에 든 마우스의 클릭질에 따라 넘어가는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자태를 잊을 수 없었다. 나는 당장에 그게 어디선 나오는 프로그램인지 뒷조사를 들어갔었고, 그게 애플 맥에서만 실행이 되는 프로그램이며, 이름이 키노트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때부터 나는 애플 키노트의 추종자가 되었고 얼마나 추종했는지 또 그 후로부터 5년 뒤 나는 <키노트 프레젠테이션>(한빛미디어)이라는 책을 출판하기까지 이르렀다.







나는 그야말로 애플 전도사였다. 대학원생이던 당시 용돈벌이를 위해서 애플 키노트 교육을 많이 다녔는데, 나처럼 키노트를 처음 보고 접신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내가 홍보해서 팔은 애플 맥북만 하더라도 50대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애플! 애플! 을 외치던 나는 전자회사 대기업 실기 시험장에도 맥을 당당히 들고 들어가서 작업하였고, 마지막 피티까지 훌륭(?)하게 마쳤다. (나의 합격에는 아마도 키노트 애니메이션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입사 때 만든 키노트 슬라이드 일부


그러던 나는 입사 후 변절자가 되었다. 회사의 시스템 때문에 변절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파워포인트와 친해져야 했다. 파워포인트는 왜 이렇게 쓰지도 않을 메뉴를 죄다 밖으로 끄집어 내놨는지, 또 왜 이렇게 애니메이션이 매끄럽지 않은지, 또 왜 이렇게 멀티미디어 소스들을 거부해대는지, 왜 자간은 세밀하게 조정이 안되는지 등 불편한 일들 천지였다. (물론 어디 다 숨겨놨겠지, 찾아보면 있겠지..)

하지만 회사에서 파워포인트는 만능 툴로 통했다. 뭔가 싼 느낌이 나는 프로토타입 핑도 쉽게 할 수 있고, 그럴싸하게 보이는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파워포인트가 참 만능 툴이다', '버전이 업되니까 더 좋은 기능들이 많다'라고 말을 많이 했고, 나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한 번도 그 사실에 대해서 인정한 적이 없다. 애플 키노트로 구현하면 더 쉽고 간지 나게, 짱짱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변절자가 된 나는 파워포인트와 굉장히 친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단축키를 모두 외우고 있었고, 마치 피아노 치듯 문서를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맥킨토시 앞에 앉았다. 어느덧 잘 자란 키노트 버전이 7.0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고 (내가 책을 썼을 때는 5.0, 6.0)  그렇게 친했던 애플 키노트인데 다시 보니 낯설기 그지없었다. 더 가관이었던 사실은 키노트의 자간 조절 단축키가 생각이 안 났다. 그렇게 키노트는 잊혀가고 있었다.




오랫만이다 키노트?


그런데 며칠 전 회사에서 세미나 요청이 왔다. 2년 전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었는지를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비슷하게 한번 더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당시 본사 건물에 당당하게 애플 맥북을 챙겨 키노트로 발표를 했었다. 리허설 할 때 윈도 노트북과 충돌이 많아서 주최 측에서 파워포인트로 바꿀 수 없느냐는 요청에 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아는 동생 맥북 프로를 빌려와 발표 환경을 맥기 반으로 바꾸면서 행사가 진행되었었다. 그 행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전무후무하게 애플을 회사에 들고 간 연사다. 아무튼, 이번에도 애플 키노트로 한번 더!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볼까 하고 오랜만에 아이맥 앞에 앉아서 애플 키노트를 열었다.


그간 어색했던 애플 키노트가 몇 번 만져보니 금세 손에 달라붙었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스무스한 이 느낌이란 여러 만감이 교차하여, 갑자기 애플 키노트 예찬!